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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둘레길 / 남한산성 성곽길 / 삼전도비
북문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남한산성 둘레길을 걸어봅니다.
하편에서는 연주봉옹성 - 영주봉 - 서문(우익문) - 수어장대 - 남문(지화문)
제1남옹성 - 제2남옹성 - 제3남옹성 - 동문 - 주차장 코스입니다.
수어장대
남한산성 방어를 총지휘하던 곳
북장대터
장대란 지휘와 관측을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 건물이며
남한산성에 5개의 장대가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곳 북장대가 있었던 곳으로 성의 북쪽에 있어 북장대라 합니다.
남한산성은 겨울이라도 푸름이 있어 더욱더 즐거운 발걸음입니다.
소나무가 워낙 많은곳인듯 합니다.
옛날부터 소나무를 많이 심었다고 전해집니다.
참으로 멋진 풍경입니다.
제5암문(연주봉 옹성 암문)
연주봉으로 통하는 암문이랍니다. 연주봉은 서북쪽의 요충지랍니다.
암문의 문으로 돌을 구멍을 내어 문을 열고 닫을 수 있게 만들어 두었답니다.
연주봉 옹성에서 바라본 남한산성의 모습
연주봉
연주봉에서 왔던 길을 되돌아보니
흐린 날이었지만 멋진 남한산성입니다.
산행온 사람에게 한 장 부탁해 인증샷을 남겨봅니다.
그런데 내 발은 어디로 ~ ^^
어느 도시인지 알수가 없답니다.
연주봉에서 성안으로 들어가는 암문입니다.
희미하게 보이는 곳이 성남골프클럽인듯 합니다.
이길을 걸어가는데 근처에 사격장이 있는지 총소리가 자주 들리는 듯 했답니다.
옛날 이 총들이 있었으면 .... 청태종 저넘들은 그냥 싹 ~ 했을 텐데..
우익문(서문)
서문은 남한산성의 북동쪽 모서리 부분의 해발 450m 지점에 위치하며
개구부와 문루로 구성되었있답니다.
경사가 급하기는 하지만
광나루나 송파나루 방면에서 산성으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
물자를 이송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우익문(서문)
병암남성신수비
선조들의 건축실명제를 한 단면으로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금석문
정조3년 6월18일까지 약 50여 일간에 걸쳐
수어사 서명응의 지휘아래 남한산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한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비문에는 산성을 증. 개축하였는데 돈 1만 냥과 쌀 900석의 재정을 투입했다는 것과
당시 감독관인 광주부윤 이명중의 지휘아래
벽돌, 석회 등을 구워 운반하는 관리자와 보수영역을 18구역으로 나누어
담당한 18패장의 이름 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돌은 두개로 되었있습니다.
청량당
청량당에는 이회와 그의 처첩에 관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답니다.
이회는 조선시대 남한산성을 축성할 때
동남쪽 부분을 맡았는데 경비를 탕진하고 공사에 힘쓰지 않아
기일 내에 공사를 마치지 못하였다는 억울한 모함을 받게되어 처형당한다.
그의 처첩도 남편의 성을 쌓는 일을 돕기위해 삼남지방에서
축성자금을 마련하여 돌아오는 길에 남편의 소식을 듣고
강물에 투신자살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무고함이 밝혀져 서장대 옆에 사당을 짓고
그와 그의 처첩의 넋을 달래게 하였답니다.
수어장대
장대란 지휘관이 올라서서 군대를 지휘하도록 높은 곳에 지은곳으로
수어장대는 남한산성에 세워졌던 5개의 장대중 현존하는 유일한 건물이랍니다.
무망루(無忘樓)
조선 영조27년(1751년) 광주유수 이기진이 증축한 수어장대 2층의 내편 문루로서
그 편액이 2층 누각에 있어 1989년 전각을 건립
하고 이 안에 현판을 새로 설치 일반인이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무망루는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8년간 청나라 심양에 불모 잡혀갔다가
귀국 후 북벌을 꾀하다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이름 지은 것이라고 적혀있답니다.
아픈 역사의 부분입니다. 무망루 ~!!!
그 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는 뜻!!! 꼭 기억해야 합니다.
탁지부측량소 삼각점
대한제국 말기 탁지부에서 토지조사서업을 시행하기 위하여
건국 이래 최초로 경기도와 경상북도의 일부 지역에
지적세부측량의 기준이 되는 삼각점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1910년 8월 경술국치 후 조선총독부에서 전국적인 토지조사 사업을 시행하기 위하여
한반도에 일제히 삼각점을 설치하면서
이와 구별하기 위하여 탁지부에서 설치한 삼각점을 구소삼각점이라 하였다.
이곳 경기도 남한산성 수어장대에 설치되어 있는 구소삼각점은
장대라고 불리며 머리 부분에 +자가 새겨져 있고
모서리에는 도지부라고 적혀있다.
전국에 10여점이 남아있는 것으로 지적사적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 유물로
삼각점으로는 우리나라 최초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관리되고 있다.
암문
남문(지화문)
남한산성에는 동, 서, 남, 북문 4개의 대문이 있는데
남문은 남한산성 4대문중 가장 크고 웅장한 중심 문으로
2009년 정조의 글씨를 집자하여 전면에 현판을 설치하였으며
아픈 역사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처음 남한산성으로 들어올 때
바로 이문으로 통해서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때 조선 인조임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찹찹해집니다.
남문 바깥의 모습입니다.
남장대터
누군가 이렇게 사랑을 하는가 봅니다.
약 10km의 남한산성 둘레길을 걷고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가배산성에서 팥죽한그릇 하고 여유를 보려봅니다.
맛있는 팥죽을 한 그릇하고
남한산성 남문(지화문)으로 들어가 피난길에 올랐던 인조
청태종에게 항복을 하고 이마에 피를 흘리며 원통해 했던 그 현장으로 가봅니다.
삼전도비
이 비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 태종의 요구로 1639년 12월에 세운 비석이랍니다.
원래 이름은 대청황제공덕비 이지만 1963년 문화재 지정당시 지명을 따서 삼전도비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한강의 물길이 닿는 나루터였던 삼전도는 1950년대까지 나룻배가 다녔으나
1970년 이후 한강 개발로 인해 사라졌다고 합니다.
비석 앞면 왼쪽에는 몽골글자가
오른쪽에는 만주글자가
뒷면은 한자가 각각 새겨져 있답니다.
치욕 비라고 불리기도 하며
청나라가 조선에 출병한 이유, 조선이 항복한 사실
항복을 받고 청태종이 피해를 입히지 않고 바로 회군하였다는 사실
청나라 조정의 명으로 조선에서 건립한 아픔의 비랍니다.
삼전도비 위치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치욕스런 치욕비인 삼전도비가
이렇게 서있답니다.
삼전도 나루터에서 치욕적인 청태종에게 세번 절하고
한번 절할 때마다 이마를 땅에 세 번 부딪치게 피눈물을 흘렸던
아픈 역사의 현장이랍니다.
무망루(無忘樓)
조선 영조27년(1751년) 광주유수 이기진이 증축한 수어장대 2층의 내편 문루로서
그 편액이 2층 누각에 있어 1989년 전각을 건립
하고 이 안에 현판을 새로 설치 일반인이 볼 수 있게 만들었다.
무망루는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8년간 청나라 심양에 불모 잡혀갔다가
귀국 후 북벌을 꾀하다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이름 지은 것이라고 적혀있답니다.
아픈 역사의 부분입니다. 무망루 ~!!!
그 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는 뜻!!! 꼭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아픈 역사가 있었던 남한산성 그냥 한 바퀴 걷는것보다
아픈 역사를 교훈삼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남한산성 잘 보전되기를 바라면서
남한산성 둘레길 끝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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