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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산행 / 남한산성 둘레길

 

우선 둘레길을 걷기 전에

남한산성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답니다.

남한산성은 삼국시대 백제 위례성으로 추정되기도 하고

신라시대에 쌓은 주장성이라고도 하는 설이 있답니다.

그렇게 멋지게 쌓았던 남한산성은 수많은 아픔이 있기도 한 곳이랍니다.

 

바로 1636년 병자호란의 치욕이 고스란히 있는 곳이지요.

1627년(인조5년) 발발한 정묘호란이후 후금이 조선에 무리한 요구를 하자

조선이 대항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눈치 챈

후금은 조선의 왕자를 보내고 사죄를 요구

조선이 이를 거절하자 청태종이 12만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치기 시작해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지만 식량부족과 군사부족등으로

결국 성문을 열고 삼전도에서 항복을 했던 아픔이 있지요.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랍니다.

청나라 황제는 높은 단상에 앉아서 삼궤구고두(세 번 절하고 절 할때 마다 세 번 이마를 찧음)를 받았답니다.

일국의 왕으로 치욕의 날 이였지요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신하들의 마음 또한 어떠했을까요?

이런 우리의 아픈 역사가 있었던 남한산성임을 알고 산행 둘레길을 돌아보는 게 어떤가 싶습니다.

 

그 삼전도(지금의 서울 송파구 삼전동 석촌호수부근)비가 석촌호수에 있답니다.

남한산성 포스팅 두 편으로 나눠 마지막 부분에서 보여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남한산성

 

 

 

 

남한산성 탐방코스는 총 5개 코스가 있답니다.

 

그중 5코스 남한산성 성곽을 따라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을 걸어봅니다.

남한산성 버스 종점 - 동문 - 장경사 - 동장대터 - 북문 - 북장대터 - 연주봉 - 서문

수어장대 - 남문 - 제1남옹성 - 동문 - 버스종점으로

총 10.0km의 코스였습니다.

(지도의 파란색 선) 

 

 

 

 

남한산성 버스 종점에서 동문으로 가는 곳에

5일장이 열렸던 장터가 있답니다.

조선조 말까지 성내에  읍치소가 있고

민가가 일천여호나 되는 큰 마을이었다.

주민들은 이곳을 아직 장터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연무관

군사들의 훈련을 위한 곳으로

인조 2년 남한산성을 쌓을 때 같이 쌓았다고 전해집니다.

 

 

 

 

남한산성은 2014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의 귀중한 유산을 관리하는 사무소인 듯합니다.

 

 

 

 

지수당

현종 13년 부윤 이세화가 건립한 정자로 건립 당시에는

정자를 중심으로 앞뒤에 3개의 연못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두개만 남아있답니다.

 

 

 

 

이제 본격적인 출발점인 동문(좌익문)이랍니다.

남한산성에는 동, 서, 남, 북 4개의 대문이 있는데

동문은 성의 남동쪽에 위치하며 남문과 함께 가장 많이 사용했던 성문

 

 

 

 

동문에서 성곽을 따라 고고!!

고고

물론 걸어서 갑니다.^^

 

 

송암정터

 

송암정은 우리말의 "솔 바위 정자"라는 뜻이나

옛날 황진이가 금강산에서 수도를 하다 하산하여

이곳을 지나는데 남자 여럿이 기생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중 술에 취한 한 사내가 황진이를 희롱하려 하자

 

황진이는 개의치 않고 오히려 불법을 설파하였다.

이 때 그 무리중 감명을 받은 기생 한 사람이 갑자기 절벽으로 뛰어내려 자결하였는데

그 후 달 밝음 밤에는 이곳에서 노랫소리와 통곡소리가 들렸왔다고 하네요.

이 바위에 서있는 고사목(소나무)은 정조가 여주 능행길에

'대부'벼슬을 내려 '대부송'이라 부르는 소나무랍니다.

 

 

 

 

하얀 눈이 쌓인 남한산성이 더 멋져 보입니다.

하루 전에 눈이 내렸지만 날씨가 많이 풀려서 남한산성으로 왔답니다.

 

 

 

 

사각사각 낙엽소리를 들으며

뽀드득 뽀드득 눈 밟는 소리를 들으며 산성 길을 즐겨봅니다.

 

 

 

 

누군가가 산성위에 꼬마 눈사람을 하나 만들어 두었네요.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곳이

한 바퀴 돌고 마지막 내려오는 길입니다.

 

 

 

 

 

 

 

 

 

장경사는 인조2년 남한산성을 수축할 때 건립된 사찰로

남한산성을 수축할 때 전국 8도의 승군을 소집하여 성을 쌓게 하고

이후 그대로 거주하면서 평상시에는 지역별로 구간을 나누어 성곽을 관리 보수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장경사는 충청도 출신의 승군들이 머물던 사찰

이곳은 1907년 일제의 군대 해산령에 의해 성안 사찰의 무기고와 화약고를 폭파할 때

다른 사찰에 비해 비교적 피해가 적어 사찰중 당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사찰이라고 합니다.

 

 

 

 

 

 

 

 

 

참 멋진 남한산성 성곽길입니다.

몇 달 전 블친 칠이님이 남한산성을 소개할 때 꼭 한번 가봐야지 했던 곳이었답니다.

 

 

 

 

장경사신지 옹성

옹성은 일반적으로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한 겹의 성벽을 더 쌓은 이중의 성벽을 말합니다.

남한산성에는 모두 5개의 옹성이 있습니다.

전투시에는 성내로 진입할 수 있도록 암문을 만들어 둔 아주 과학적

우리의 문화유산 남한산성이랍니다.

 

 

 

 

왔던 길을 되돌아봅니다.

중국의 만리장성보다 더 멋진 남한산성이 아닌가 생각 듭니다.

 

 

 

 

남한산성 군포지

군포지는 성을 지키기 위한 초소

원래 125개의 군포지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단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남한산성 둘레길을 따라 걸으며

힐링을 즐기는 분들

 

 

 

 

남한산성 여장

여장이란 성위에 낮게 쌓은 담으로

이곳에 몸을  숨겨 적을 향해 효과적으로 총이나 활을 쏠 수 있데 만든 곳

 

 

 

 

남한산성 여장 안내판

 

 

 

 

동장대터

장대란 지휘와 관측을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 건물로

남한산성에는 5개의 장대가 있답니다.

 

 

 

 

 

 

 

 

벌봉(봉암)으로 나가는 길

 

 

 

 

 

 

 

 

 

봉암성

남한산성은 단순한 하나의 성곽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본성, 봉암성, 한봉성, 신남성과 5개의 옹성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구조

 

 

 

 

벌봉(봉암)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 되돌아 왔답니다.

눈이 쌓인 길이고 아이젠도 없고 해서 포기를 했답니다.

 

 

 

 

 

 

 

 

 

하얀 눈이 쌓여있는 남한산성

눈을 보고 어려운 곳에 사는 수보인지라

자꾸만 발길을 멈추게 됩니다.

 

 

 

 

제 3암문(봉암성 암문)

암문은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성문으로

일종의 비밀 통로로

이 암문은 원성과 봉암성을 연결하는 주출입구로 다른 암문에 비해 매우 큰 제3암문이랍니다.

 

 

 

 

 

 

 

 

 

이 길을 내려오는데 힘들게 내려왔답니다.

아이젠도 없이 밧줄 잡고 슬슬 기다시피 해서 내려왔던 곳입니다.

 

 

 

 

제4암문

이 암문에서 약 1키로 정도 내려가면 하남시 상사창동이 나온다고 합니다.

 

 

 

 

밧줄 잡고 내려온 길이랍니다.

 

 

 

 

 

 

 

 

 

겨울이지만 푸름이 있어 더욱더 좋은 곳이었습니다.

 

 

 

북문(전승문)

 

 

여기까지 오면서 멋지게 한번 미끄러졌답니다.

다행이 다친 곳도 없어 고마울 따름이고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의 남한산성

잘 보존되어야 합니다.

다음 편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서울지하철 8호선 산성역에서 하차

2번 출구로 나와 약 120미터쯤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환승 52번을 타고

남한산성으로 고고 !!!

산성 종점에서 하차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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