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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독립만세 순국팔의사 묘역 / 창원여행

 

대한 독립 만세!! 만세!!!

뜨거운 함성이 들리는곳

96년 전 3.1운동 독립만세를 외치다

악랄한 일본군에게 목숨을 빼앗긴 그분들

여기 독립의 기쁨도 맛보지 못하시고

독립된 대한민국을 지하에서 바라보고 계신 그분들을 찾아봅니다.

1919년 국권회복 중앙총부로부터 서부경남 일원의

독립만세의거의 지도책임을 맡은 변상태는

동지들을 규합하여 328일 진동면 고현장날을 기하여 봉기하였다.

이날 장터의 중앙에 단을 만들고

권영대는 독립운동의 취지를 설명하였으며

장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일체가 되어 일어났으며

독립만세의 함성은 앞바다를 들끊게 하였다.

시위 군중은 일본인들의 집단 거주지인 진동에 나아가

민족정기를 크게 떨쳤으며 수많은 우리의 동포가

일본헌병에게 끌려가 말할 수 없는 치욕의 고문 끝에

아홉분이 옥고를 치루었다.

그러나 불타오르는 민족의 의기는 결코 굴하지 않았다.

변상태는 다시 동지들을 규합하여

일주일 후인 43일에 크게 일어나 독립만세를 크게 외쳤다.

이날은 음력으로 삼월삼짓날이다.

이날 진전면 양촌 냇가에는 일천여명이 모여 독립 선언식을 거행하고

대한독립만세를 목이 터져라 외치면서 진동으로 향하니

연도에 대기하던 군중이 계속 합세하여 3천이 넘는 대중을 이루었다.

시위 행렬이 진북교에 이르자 다리를 사이하여

 미리 포진하고 있던 일본 헌병과 그 보조원 20여명이 진로를 막았으나

선두에서 태극기를 들고 군중을 휘동하던 김수동은

달려드는 헌병을 뿌리쳐 다리 아래로 던졌다.

이에 일 헌병이 발포하니 김수동은 흉탄에 숨졌고

그 옆에 있던 변갑섭은 태극기를 이어받아

전진하다가 일헌병의 칼에 두 어깨를 잘리어 쓰러졌다.

이날 앞장섰던 여덟 분이 적의 총칼에 숨지고

스물두분이 부상을 입었으며 현장은 피의 아수라장을 이루었다.

그리고 일곱 분이 참담한 옥고를 치루었다.

이 삼진의 독립만세의거는 수원, 수안, 선천의 의거와 더불어 4대의거로 일컬어진다.

창원시 진전면 양촌리에 이분들이 독립의 기쁨도 보지 못하고 잠들어 계시답니다.

 

 

 

 

3.1 독립만세

순국8의사묘역

 

 

 

3.1 독립만세 순국 8의사 묘역입구

몇번 지나치면서 못가본 곳이라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렇게 뵐 수 있어 참 다행이었답니다.

 

 

 

묘역 가는길

 

 

 

 

독립만세 순국 8의사 묘역

정면에서 보이는 순대로 그분들이 잠들어 계시답니다.

왼쪽 앞에서 변갑섭의사, 고묘주의사, 이기붕의사, 홍두익의사

뒷줄 오른쪽에서부터 김영환의사, 김호현의사, 변상복의사, 김수동의사

 

 

 

 

                                                                                                          순국 8의사 지묘의 모습

 

 

  

 

 

8의사 지묘에서 바라본 풍경 

 

 

 

 

 

삼진독립의거기념비

 

1919328일은 고현장날이었다.

이날 우리의 선인들은

 동포여!! 전진만 있을 뿐 후퇴는 없다!”라는 기치를 높이 세우고

목이 터져라 독립만세를 외쳐 불렀다.

이로서 여섯 분이 옥고를 치루었고

다섯분이 모진 고문을 겪었다,

 이 격렬한 독립의거 시위는 4일후의 삼진의거의 전주곡이었다.

그날 43일 음 3월삼짇날 아침부터 양촌리 앞 냇가로 모여들었다.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은 산과 들에 메아리쳤다.

군중은 대열을 이루어 일본 헌병대 소재지인 진동으로 항하였다.

30리 거리의 연대에서 대기 중이던 사람들이 속속 대열에 참가하니

사동교에 이르를 무렵에는 8천의 대중을 이루었다.

온누리가 태극기의 바다와 만세의 함성이었다.

그러나 아~아 슬퍼다 미리 포진하고 대기하던 일본헌병과 그 보조원들은

쇠붙이 하나도 지니지 않는 맨주먹의 우리겨례에게

발포하며 선두를 지키던 여덟 분이 그 자리에서 숨지고

스물두분이 부상을 입어 사동교의 현장은 피의 아수라장으로 변하였다.

또한 수백 명이 붙잡혀 갖은 고초를 당한 끝에 일곱 분이 옥고를 치루었다.

우리 지방의 삼진의거는 4대의거로 손꼽히며

~아 거룩할 사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민족정기의 정기위에 오늘날 조국은 선진국가로 전진을 계속하고 있다.

이제 경상남도와 의창군이

 이 뜻을 길이 기리고자 돌을 다듬어 이비를 세우나니

이 비를 대하는 이는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라

그 당시의 대한독립 만세의 함성이 들리지 않는가?

가슴에 손을 얹어 보라! 그날의 그분들의 맥박이 그대의 가슴속에서 고동치지 않는가?

 

함성과 고동치는 소리를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게 분명합니다.

고이 잠드소서~~ 

 

 

일본 문화유산 등재후 바로 강제노역 급 부정을 하고 있는

저 바다건너 파렴치들

지하에 있는 팔의사분들이 억울해

눈물 흘리는 비가 내리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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