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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 / 수원여행

 

화성행궁은 조선 정조대왕 수원 신읍치 건설후

수원화성 축성 기간에 증축하여 완성되었답니다.

정조대황은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 장현 세자(사도세자)의

원침인 현륭원(현재의 융릉)을 13차례나 찾았던 정조대왕

참배기간 내 화성 행궁에서 유숙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정말 지극히 효성이 지극한 대왕이군요.

 

수원화성 성곽 길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보고

화성행궁으로 발길을 돌렸답니다.

 

 

 

 

정조대왕의 처소

 

 

 

 

수원화성 성곽길 돌면서 본 화성행궁

 

 

 

 

화성행궁의 입구 홍살문과 정문입니다.

 

 

 

 

신풍루

화성행궁의 정문으로 신풍(新豊)은

국왕의 새로운 고향이란 뜻으로

정조대왕이 얼마나 수원을 사랑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느티나무는 600년 이상 된 노거수로

잎이나 나무를 꺾으면 목신의 노여움으로 어려운 일이 닥치고

느티나무 주변에 소원을 적어 걸어두었네요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 걸어볼까요?

 

 

 

 

집사청

 

 

 

 

그 당시의 궁궐의 의복을 보여줍니다.

 

 

 

 

 

 

 

 

 

화성행궁의 잡다한 사무를 보던 집사들이 사용하던 곳

 

 

 

 

중양문

 

 

 

 

봉수당

화성행궁의 정당으로 이곳에서 정조대왕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었던 곳이라 합니다.

 

 

 

정조대왕의 처소

병풍은 김홍도가 정조를 위해 주자의 시를 그림으로 그려

진상한 것으로 정조는 이를 극찬하여 항상 곁에 두고 보았다고 합니다.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

 

 

 

 

운한각

정조의 초상화를 봉인한 건물로

조선후기의 가장 대표적인 건물

 

 

 

 

이안청

운한각에 모신 영정을 옮겨야 할 사정이 생겼을 때

영정을 임시로 모셔두는 건물

 

옛날 임금은 하늘이 내린 자리가 맞는가 봅니다.

 

 

 

 

풍화당(재실)

 

 

 

 

제정

회령전의 제례에 정화수를 뜨는 우물

 

 

 

 

득중정

정조대왕이 화성행궁에서 활을 쏘던 곳으로

모두 명중 시켰다고 해서 득중정이라고 한다.

 

 

 

 

 

 

 

 

 

글 읽는 환관

 

 

 

 

나인 처소

 

 

 

 

단장하는 상궁

 

 

 

 

장락당

화성행궁의 침전으로 정조대왕이 혜경궁 홍씨의

만수무강을 빌며 직접 편액을 써서 걸었다고 합니다.

 

 

 

화성행궁의 내당으로 평상시에는 화성 유수의

가족들이 기거 하던 곳이라 합니다.

 

 

 

 

유여택

정조대와이 행차중 잠시 머물며

신하들을 접견하던 곳

 

 

 

 

외정리소

정조를 비롯한 역대 임금 행차시

화성행궁의 행사를 담당하던 관청

 

 

 

 

비장청

 

 

 

 

남군영

장용외영의 기마병이었던 친군위가

좌, 우열로 각 100명씩 입직 숙위하던 건물

현재는 무술 시범을 보이는 곳이기도 합니다.

 

 

 

 

화성행궁

효성이 지극한 정조대왕이 13차례나 찾았던 곳으로

건립 당시에는 600여칸으로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행궁이었다고 합니다.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으로 인하여 사라졌고

복원을 하여 2003년 일반인에게 공개를 하였고

2단계 복원사업을 추진 중에 있다고 합니다.

 

수원화성과 더불어 그 당시의 조선 행궁 건축물들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수원화성을 둘러보고 꼭 화성행궁도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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