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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수군통제영 / 통영여행

 

통영은 가끔가는곳이지만

삼도수군통제영내에 있는 세병관은 참으로 오랜만에 찾은 곳입니다.

세병관하면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생각나는 것이 하나있답니다.

밑에서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약 300년의 역사를 가진 통영 삼도수군통제영의

복원된 모습인 통제영을 둘러봅니다.

 

 

 

 

세병관

국보 제305호

 

 

 

 

삼도수군통제영 입구인 망일루

삼도수군통제영은 입장료 일반 3,000원, 군인 및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이랍니다.

단 통영시민은 50%할인

3월 ~ 10월 09:00 ~ 18:00

11월 ~ 2월 09:00 ~ 17:00

 

 

 

 

좌청

군관과 사병이 대기하던 건물

54대 신여철 통제사가 1689년에

좌청, 우청으로 분청하였다고 합니다.

 

 

 

 

수항루

통영성 남문 밖에 위치하였는데

임진왜란의 승전을 길이 기념하기 위하여

숙종3년 제58대 윤천뢰 통제사가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수항루는 봄, 가을 군점때 모의 왜병으로 부터 항복 받는 행사를 거행해 왔다.

해안매립으로 인해 선착장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려

1986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여 중건하였다고 합니다.

 

 

 

 

산성청

통영성을 지키는 산성중군등이 근무했던 곳으로

숙종34년(1708년) 제83대 오중주 통제사때 건립하였으나

소실되었던 것을 발굴 유구와 문헌에 의하여 최근에 중건

 

 

 

 

 

 

 

 

 

세병관은 통제영의 객사로 제6대 통제사 이경준이 이곳에 통제영을 옮겨온

이듬해인 1605년에 처음 세웠다.

35대 통제사 김응해가 1646년 규모를 크게 하여 다시 지었으며

제194대 통제사 채동건이 1872년 다시 고쳐 지은 것이다.

 

경북궁 경회루와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지금 남아있는 조선시대 건축물 가운데 바닥 면적이 가장 넓은 건물중의 하나이라고 합니다.

세병(洗兵)이란 만화세병에서 따온 말로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뜻

세병관이라 크게 써서 걸어놓은 현판은 제137대 통제사인 서유대가 쓴 글씨

(국보 제305호인 세병관)

 

 

 

 

우측에서 현무기, 백호기, 주작기 ,청룡기 깃발

 

 

 

 

옛날 세병관 왔을 때 기억에 오랜 남는 것중에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세병관의 처마에서 떨어진 빗방울이 수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이렇게 화강암 같은 돌은 이렇게 만들었답니다.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서 엄청난 힘을 발휘한 것이지요

살아오면서 많은걸 느끼게 한 곳이었답니다.

100원 동전을 놔두고 크기를 비교해 보았답니다.

 

 

 

 

기삽석통

세병관 앞뜰에 영기와 장군기를 세우기 위해 깃대를 고정하는

두개의 돌기둥으로 정조10년(1786년) 제 142대 류진항 통제사가 세웠다.

원래는 세병관 뜰앞 좌우 양편으로 2기가 있었으나

현제 세병관 앞뜰 담장 부군에 서쪽 1기만 남아있다.

 

 

 

세병관의 세월이 느껴지는 세병관 마룻바닥

수백 년전 우리 수군들이 얼마나 이 바닥을 다니고 닦고 했을까요?

 

 

 

 

수령 약 400여년된 느티나무

통제영 창건당시 심었다고 전해짐

 

 

 

 

잉번청

통제영 공방의 건물이나 물건등을 지키는 사람이 근무하던 곳

 

 

 

 

 

 

 

 

야장방

쇠를 녹여 화살촉, 칼등 병기 및 각종 철물을 주조하던 곳으로

19세기 초기에는 연마장, 도자장등으로 구성된 연마답이 별도로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은방 석방

 

은방은 금과 은을 세공하여 각종 장신구 제품을 만들던 곳이며

석방은 주석과 백동으로 각종 장석을 만들던 곳입니다.

 

 

 

 

나비장등에 붙이는 장석의 모양들입니다.

 

 

소목방은 나무로 가구 및 문방구 등을 만들던 곳

 

화원방은 각종 지도 및 군사적 목적의 의장용 장식화를 그렸던 곳

 

패부방은 자개를 붙여 나전제품을 만들던 곳

 

상자방은 버들가지 등을 엮어 상자를 만들던 곳이나 현재는 염장(대발)공방으로 사용

 

총방은 말총을 엮어 망건, 탕건, 유건등을 만들던 곳

 

입자방은 흑립이나 벙거지, 삿갓, 패랭이 등을 만들던 곳

 

선자방은 단오절에 임금이 하사하던 부채를 제작하였던 공방으로

부채의 형태에 따라 단선과 접선 그리고 별선으로 구분

 

이와 같은 12공방은

제반 군기와 진상품을 생산하였던 곳으로 백화당 서쪽에 자리하며

군수품 생산과 민생에 필요한 물품은 물론 조정에 진공품과 때로는 중국가는 사신의 현상 품까지도

조달하는 조직적인 분업의 군영 공방체제를 갖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초기 변방에서 각종 군수품을 자체 조달목적으로

이순신 장군이 한산진에서 시작하였으나(1593년) 임진란 이후

통제영이 창성하자 크게 번성하여 다양한 생활용품까지 생산하였다고 전해집니다.

 

 

 

 

백화당

 

선조 36년(1603년) 제6대 통제사가 건립

중국 사신 등의 손님들을 맞이하는 통제사의 접견실이자 비장청인데

비장은 지방장관 및 중국사신을 수행하던 무관으로

민정의 염탐과 같은 업무도 맡았으며 지방장관이 임의로 임명 하였다고 합니다.

 

 

 

 

내아군

통제사가 업무를 보던 곳

 

내아군 내에는 운주당과 이순신 장군의 영당이자 관사인 경무당이 자리하고 있다.

그 우측으로 살림채인 내아가 자리

 

 

 

 

팔사품

 

팔사품은 임진왜란 때 참전하였던 명나라 수군도독 진린이

신종에게 이순신장군의 전공을 보고하자

이에 감탄한 신종이 이순신 장군에게 하사한 8종 15개의 유물을 말합니다.

진품은 현재 충렬사에 소장되어 있고

통제영에 전시된 것은 복제품이라고 합니다.

 

 

 

 

통제사의 작은 집무실인 경무당

 

 

 

 

득한당

휴식을 얻는 곳이란 뜻으로 통제사가 휴식을 취하던 곳

 

 

 

 

이순신 장군의 모습입니다.

휴식시간이 없는 듯 합니다.

 

 

 

읍취헌

통제사가 풍경을 조망하며 휴식을 취하던 정자

 

 

 

 

후원에서 본 풍경

 

 

 

 

주전소

통제영 주전소 유구는 조선시대 동전을 만들던 곳

국내 최초로 조선시대 화폐인 상평통보와 도가니, 화로 등이 출토되었답니다.

 

 

 

 

통제사비군

통제사비군은 역대 통제사들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이 시내 일원에 흩어져 있던 것을

현 위치에 모아서 동향으로 58기를 4줄로 나란히 세워 놓은 것을 말합니다.

 

삼도수군통제영은 1604년에 설치되어

1895년에 폐영될때 까지 경상, 전라, 충청의 삼도수군을 지휘하던

본영을 말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초대 통제사로 제수된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진영이 최초의 통제영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통제영 12공방은 임진왜란 당시 초대 통제사로 제수된

이충무공의 한산도 진영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300년 역사를 밝혀 줄 통영 삼도수군통제영이

13년에 걸친 복원공사를 통해 새롭게 단장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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